[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차별과 빈곤에 맞서온 인권 변호사 우츠노미야 겐지(宇都宮健兒, 73살) 씨는 요즘 한국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의 피해회복이 문제의 핵심인데 당사자 없이 국가 간에 전부 결정을 내려 버렸습니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진지하게 반성하며 행동으로 나타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을 정부와 국민이 함께 해야합니다.” 후덕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의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전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는 지난 8월 24일 YTN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베정권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반발해 수출규제와 백색 국가 제외 조치를 단행한 이후 이른바 양심적인 일본의 지식인 들은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처럼 저마다 ‘아베정권의 철딱서니 없는 처사’에 강한 불만과 질책을 쏟아내고 있다. 에히메현(愛媛県)의 남서부에 있는 세이요시(西予市)에서 태어난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는 1946년생으로 그가 태어난 시기는 패전으로 일본 전역이 폐허 더미였을 시기였다. 그가 태어난 고향 아케하마쵸(明浜町)는 반농반어(半農半漁) 지역으로 그는 9살 되던 해에 가족과 함께 오이타현(大分県)으로 이사했다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4월 16일 “변호사 후세 다츠지 영화 상영”이라는 큼지막한 전단지를 만든 곳은 양심 있는 일본 시민들이 꾸려가는 고려박물관이다. 고려박물관은 1회 90분짜리 영화를 4월 16일부터 4일간 상영 할뿐 아니라 4월 2일부터 6월 1일까지 일본의 양심인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 (布施辰治 1880 ~ 1953)에 대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1월 29일부터 3월 30일 까지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전시 중. 시 이윤옥, 한국화 이무성) 후세 다츠지 변호사는 한평생을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어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법률 변호를 맡아준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땅에서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부르짖었을 때 이들의 변론을 맡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3·1운동 때는 “조선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발표할 정도로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공로를 높이 사서 한국정부에서는 2004년 후세 변호사에게 일본인 최초의 한국건국훈장 애족장(2004)을 추서했다. 후세변호사는 1923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해 의열단원 김시현(金始顯)의 조선총독부 요